이 책의 제목(Let the nations be glad)은 책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존 파이퍼의 선교에 대한 생각과 주장들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선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로 시작한다. 어떻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선교의 이유가 되는지? 이 일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이며, 선교를 통해 드러나는 기도의 능력이 어떠한지를 차근차근 나눈 후에 왜 예수님 한 분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하는지를 다루고 5장에서는 왜 예수님께서 열방의 주재가 되시는지 예수님께서 얼마나 모든 족속으로 예배 받으시고 싶어하시는지에 대해서 나누고 있다.

사랑은 분명히 선교의 동력이 되며 선교를 정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선교 사명을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의문에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성경에서 꾸준히 말하는 선교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구원받는 개인들의 총 숫자를 늘리기 위해 다른 문화로 가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그보다는 오히려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모든 종족 집단들이 그리스도의 증거를 들으며 그 이름을 위해 하나 된 민족이 모든 열방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아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974년 이래 영토를 복음화한다는 것과 대조적으로 미전도 종족들을 복음화하는 데 점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랄프윈터 박사는 ‘종족에 대한 무지’를 비판하면서 나섰고 1982년 로잔에서는 종족집단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관심이 어디에 있으며 효과적인 선교사역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그렇다면 종족 집단에 초점을 두는 것은 과연 성경적인 것인가? 성경의 구체적인 선교명령은 무엇인가? 가능하면 많은 개인들에게 찾아가라는 명령인가? 모든 ‘현지’를 찾아가라는 명령인가? 아니면, 성경에서 종족 집단들을 정의하고 있는 대로 세상의 모든 ‘종족 집단들’을 찾아가라는 명령인가? 이에 대한 신·구약의 다양한 구절들을 찾아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신약에서 에뜨노스를 단수로 쓰면 절대 이방인 개인들을 의미하지 않고 항상 종족 집단이나 종족을 의미한다.
  2. 복수 에뜨네는 이방인 개인들 또는 종족 집단을 의미할 수 있다. 어떨 때는 문맥을 봐야 둘 중 어는 것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둘 중 어느 쪽이라도 상관 없다.
  3. 판타 테 에뜨네는 신약에 18회 나온다. 그러나 이방인 개인들을 뜻하는 경우는 단 한 번뿐이다. 아홉 번은 종족 집단을 의미한다. 나머지 여덟 번은 애매하다.
  4. 헬라어 구약 성경에서 대략 100회 정도 사용된 판타 테 에뜨네는 사실상 모두 이스라엘 백성과 구별되는 열방을 언급하고 있다.
  5.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를 인해 복을 받고 그는 또 ‘열국의 아비’가 되리라 하신 약속은 신약에서 다시 등장하며 교회 선교가 종족 집단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데 이는 구약에서 이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6. 구약의 선교 소망은 하나님의 영광이 종족들 가운데서 선포되고 그 구원을 모든 열방이 알도록 하라는 권면과 약속과 기도와 계획의 형태로 반복해서 표현되어 있다.
  7. 바울은 자신의 구체적인 선교 사명을 이 구약의 소망이란 견지에서 이해했으며 종족들과 관련된 약속들을 자기 선교의 토대로 삼았다. 그는 그저 더욱더 많은 개인들이 아니라 더욱더 많은 종족 집단들을 찾아가는 데 몰두했다. 그는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내리신 사명을 이런 견지에서 해석했다.
  8. 사도 요한은 선교 사명을 ‘하나님의 자녀들’ 또는 ‘다른 양’을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에서 사람들을 모으는 것으로 보았다.
  9. 누가복음 24장 46~47절에서 예수님께서 내리신 선교 사명의 구약 문맥은 판타 테 에뜨네의 가장 자연스런 의미가 ‘모든 종족들 또는 나라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10. 마가복음 11장 17절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내다보시면서이를 종족 집단의 견지에서 생각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예수님께서 “가서 판타 테 에뜨네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명령과 “이 천국 복음이 파신 토이스 에뜨네신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는 약속의 의미는 세상의 모든 종족 집단을 제자 삼으라는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1982년 내린 ‘종족 집단’의 정의로는 종족 집단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성경에서 소개하고 있는 방언과 가족이라는 개념이 ‘종족 집단’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다. 또한 선교의 사명이 세상의 모든 미전도 종족 집단들에게 이르는 것이라면 전도(reached)의 개념을 알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대부분 자신의 종족 집단을 복음화할 수 있는 현지인 교회가 있으면 ‘전도되었다’고 정의하지만 이것 역시 완벽한 기준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열방을 향해 가라이상의 내용에서 예수님의 선교명령의 대상이 ‘종족 집단’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지존하심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역사를 통틀어 하나님의 위대한 목표는 자기 이름의 영광을 높이고 나타내셔서 모든 열방에서 온 자기 백성들이 이를 누리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종족 집단’이라는 다양성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또한 그 다양성으로 예배 받고 싶어하시는 분이시다. 다양한 종족들이 다양한 언어로 예배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 자신의 영광을 높이신다. 선교의 사명이 무엇이며 종족 집단을 대상으로 선교사역을 한다는 것이 선교의 본질적 이유인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높이는지를 5장에서는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Popularity: 40% [?]

Related posts: